토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빗살무늬토기와 가장 큰 차이점은 무늬의 유무였고, 그 다음 차이점은 바닥이 둥글거나 뾰족한 빗살무늬토기와는 달리 민무늬토기는 대부분이 바닥이 평평하였다. 그밖에도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와질토기와 적색토기가 등장하였으며, 훗날 이것들은 신라토기와 가
청자생산의 중심지였고 전북 부안과 전남 강진은 대표적인 청자가마 밀집지역이다. 그리고 녹청자가마는 인천 경서동가마와 전남 해남 진산리가마가 대표적이다.
Ⅱ. 고려청자의 역사
1. 10세기
청자와 백자가 탄생되는 시기지만, 역시 토기가 더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지금까지 남아있는 다양한
청자 가마는 전라도 강진, 부안외에도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충남서산군 성연면 오사리 등지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양질
청자에 비해 인천시 북구 경서동과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에서는 '녹청자'로 불리는 거친
청자도 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통일 신라시대의토기 바탕흙을
신라 말 토기에서 청자로 발전하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신라시대에는 금속기와 토기가 널리 사용되었으나, 왕족과 귀족들의 최고의 공예품은 금으로 만든 여러 장신구였다. 이에 비해 고려시대에는 청자와 백자 등의 도자기가 만들어져서 왕실과 개경을 중심으로 살던 중앙 귀족이 애용하였다.
우리
신라토기는 꾸밈새 없는 질감, 음각으로 된 파상문·삼각문·평행집선문·원권문 등의 기하학적 문양이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고졸하면서도 소박한 고대인의 정감이 넘쳐흐르는 듯한 정신적 힘이 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 삼국시대에는 중국 화난 고월자의 청자·흑유자 등이 수입된 것이 최근에 밝
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당시 귀족 중심의 불교국가인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은 청자는 그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많은 걸작을 남기고 고려시대 후기를 정점으로 점차 사라져 가게 된다.
세계 도자기의 발전을 보면 토기에서 도기/석기로, 도기/석기에서 청자로, 청자에서 백자로 발전되었다. 청자에서
도자기라고 하면 으레 고려청자, 조선 분청자와 백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옛 도기를 포함해야한다.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대략 일만 년 전에서 육천 년 전 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7~8천년 전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토기를 빗살무늬토기를 기준으로 하여 선빗살무늬토기는 그의 유형에 따라 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로 나뉘어지며 제작방법이 소박하고 태토(도자기만드는 흙)가 거친 것이 특징이다. 기원전 1000년경까지 신석기시대문화를 대표하게 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빗 모양의 도구로 토기의 표면을 누르거나